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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 나들이 남양주 봉선사, 세조와 정희왕후의 광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

골드스푼 2020. 3. 27. 17:04

봉선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로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 국사께서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서기 1469년, 조선 예종 1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는 광릉이라 하고,

이어 당사를 초창하여 선왕의 능침의 명 복을 비는 자복사로 삼고 봉선사라 하였습니다.

명종 6년 문정왕후는 강남 삼성동의 봉은사를 선종 본산 수사찰로,

봉선사는 교종 수사찰로 지정하여 전국의 사찰을 관장하게 했습니다. 

이후 오늘날까지 종풍과 선종사찰의 법맥을 전승하고 있다.


경내에 납골당이 있고 연못과 카페 등이 자리하고 있어서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습니다.

가수 유현상이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 장소로도 유명하며

가왕 조용필 역시 첫 번째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봉선사를 에두르고 있는 산도, 산속에 안겨 있는 천년 고찰 봉선사도 계절과 함께 수려한 아름다움을 풍깁니다.


봉선사 입구 넓은 주차장에 무료주차가 가능합니다. 사찰내에도 주차가 가능한 거 같지만 저희는 걸어 들어갔습니다.

일주문 앞에는 봉선사 부평리 3.1운동 만세 시위지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1919년 3월 29일 봉선사 스님들이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를 설치하고,

 30~31일 부평리 광릉천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서있습니다. 의외의 비석이라 연유를 알아 봅니다.

운허스님은 변절자의 낙인과 차남 봉근의 죽음 등으로 번민하는 춘원에게

몸소 [법화경] 한 질을 가져다주어 법화경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고 합니다.

봉선사 경내 연못에 서식하는 붉은귀거북입니다.

원래 미시시피 강변에 살아야 할 외래종 별주부가 상대적으로 싼 가격 때문에 애완용으로 많이 수입되었고,

사찰의 방생법회 등을 통해 퍼져 나가 고유종 남생이를 밀어내고 우리 생태계에 적응한 사례로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바위 위 세 마리의 거북이 바위 색상과 똑같고 바위 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으니 마치 조각처럼 보였습니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얼음 상태에서 눈을 굴리더라구요~

봉선사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지라 사람에 대한 경계는 없는 듯 합니다.

사람이 가까워지면 진작에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갈텐데 아랑곳 않고 계속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거나 종교가 없더라도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신이 고되고 지칠 때 속세를 훌쩍 떠나 명상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자연속에서 고민을 내려놓고 참된 나를 만나는 템플스테이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봉선사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붓다의 향기’입니다.

청년희망캠프인 ‘붓다의 향기’는 4박 5일 동안 자신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제시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 함께 찾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청풍루

6.25로 전소되기 전에는 천왕문과 해탈문 및 소설루가 있던 자리에

모든 신도들이 '조약돌 모으기 운동'이라는 불사를 전개하여 1985년에 낙성을 보았습니다.

봉선사동종은 예종 원년(1469)에 선왕인 세조대왕의 치적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 위하여

정희왕후의 발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총 높이 229.4㎝, 입지름 156㎝의 대형 청동범종으로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약사여래불상에 신도들이 직접 금박을 하며 기도하는 개금불사가 진행이고,

만원을 시주하면 순금종이 2장을 받을수 있는데, 불상의 얼굴 부분만 빼고 자유롭게 금박을 입힐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니 벌써부터 연등을 다는 등 준비가 한창입니다.

절의 주된 전각인 큰법당은 대웅전에 해당됩니다.

큰법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으로 절의 중심이 되는 전각입니다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는 일컬은 데서 유래합니다.


봉선사는 특징적으로 운허큰스님께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경전을 한글번역작업을 하신분이라서

대웅전이라는 명칭을 큰법당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서 편액을 달았다고 합니다 .

오늘은 신기하게도 움직이는 곳마다 풍경소리가 울립니다.

봉안당은 봉선사를 창건하여 개산한 개산대공덕주 정희왕후 윤씨와, 중건공덕주인 계민선사와

정문수행을 모시기 위한 당우로서, 개산과 중건의 머릿글을 따서 이름한 것입니다.

현재의 조사전 전각이 원래는 개건당이었는데, 이 당우를 신축하여 개건당으로 사용하고

원래의 개건당은 조사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봉안당으로 명하여 납골당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977년 7월, 대시주 정보현행의 도움으로 삼성각과 동일한 규모로 지어서 원래는 '개건당'으로 사용하던 당우입니다.

근래에 들어 그 아래쪽에 새로이 전각을 지어 개건당에 모셔졌던 봉선사의 개산과 중건의 공덕주들을 모시고는, 

이곳은 조사전으로 장엄하여 계민선사와 월초스님을 비롯한 근대의 봉선사 조사스님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지장전 벽면에 불교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안에 한글로 설명을 해놓았는데

지옥에 있는 어머니를 구하기위한 목련존자의 지극한 효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원래는 노전 스님이 머무는 노전채였던 것이, 6.25때 전소되었다가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 복원되어 지금은 관음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스타일의 관세음보살상머리에는 관세음보살의 필수품인 보관을 썼는데,

보관 역시 새로운 스타일이며,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고, 왼손에는 감로수가 든 정병을 들고 있습니다.

얼굴은 인자하고 아리따운 모습이며, 두 발은 옷 밖으로 살짝 나와 있습니다.

불교와 천주교가 서로 가까운 편이라 그들의 화합을 상징하는 이런 관세음보살상은 조금씩 늘어날 것으로 보여집니다.

정희왕후가 세조의 명복을 비는 자복사로 봉선사를 초창할 때

 절 입구에 심은 한 그루 느티나무가 아직 건재합니다.  수고 21m, 나무둘레 5m, 수령은 550년에 이릅니다.

연꽃 연못 바로 앞에 차와 커피 그리고 연꿀빵을 파는 파드마라는 카페자리해 있습니다.

연꽃을 산스크리트어로 "파드마 "라고 합니다.

연꽃이 가득할 무렵에 파드마 카페에서 연못 가득한 연꽃을 감상하며 차한잔의 여유로움을 느껴 보고 싶습니다.

승과 시험을 보았다는 승과평 터와 당간지주입니다.

맑고 향기로운 곳

산속에 있지 않고 서울 근교에 위치하고 있어 방문하기 편하고,

공원같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절에서 산책하니 마음이 경건해지고 편안해졌습니다.

답답한 요즘 봉선사에 방문해 보시면 봉선사의 매력에 흠뻑 빠지실 겁니다.